나는 왜 이런 공부를 하는가?

Posted by Sunghwan Ji on August 27, 2020 · 6 mins read

졸업한 지 1년 반, 내과수련을 시작한지는 6개월이 지났다. 병원안팎이 소란스럽고 의료계의 위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평소 하지 못했던 공부나 생각을 하고 있다.
의대다니면서 공부 뿐만 아니라 의료와 관련된 여러 고민을 했고 꿈도 꿨다. 그것을 이루고 싶어 졸업 후에 아산병원에 입사하고 내과 수련을 받고 있고, 그동안 데이터사이언스, 디지털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도 갖고 공부도 해왔던 것 같다.
최근에 일에 치여 내가 왜 이런 공부를 해왔는 지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 없이 지낸 것 같아, 시간이 좀 생겨 이번 계기로 정리해 보려 한다.

우리 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

의대 커리큘럼 중 의학사(史), 의학철학 수업은 항상 이 질문으로 시작했다. 환원주의 vs 전일주의(Holism)가 대표적인 논쟁거리였다. 즉, 우리몸을 숲으로 볼 것인가(전일주의) 나무의 합으로 볼 것인가(환원주의)에 대한 논쟁인데, 현대의학은 아주 환원주의적인 관점으로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을 배울 때도 장기->조직->세포 등으로 쪼개어 가며 각자를 배우고 그것의 합으로 우리몸을 이해했다.
어떤 질병을 배울 때에도 그 질병이 무엇인지를 장기->조직->세포, 더 나아가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수준, DNA 수준까지 쪼개어 내려가서 질병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치료했다.
임상분과도 과거에는 내과, 외과 둘 뿐이었다면, 의학이 발전해 가면서 안과, 이비인후과, 심장내과 등으로 계속 나뉘었으며, 심지어는 더 나뉘어 간다. 예를 들어, 안과는 그 안에서도 망막전문, 각막전문 등으로 나뉘어 진다.
물론, 정신과, 예방의학의 일부, 가정의학과 등의 예외도 있지만, 의학이 발전이 환원주의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은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환원주의와 전일주의 어느 것이 더 맞냐를 떠나서, 환원주의를 기반으로 발전해온 현대의학이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꿔놓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현대의학의 시작을 언제로 볼 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현대의학의 역사는 길게잡아도 200년 안쪽일 것이다. 그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인류 삶의 질, 건강, 수명을 큰 수준으로 개선한 학문이고 이런 학문을 전공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의학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지만 왜 결국 환원주의가 승리했을까?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힘들지만 단순히 생각해 보면, 그냥 우리몸이 너무나 복잡해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인간의 두뇌로 우리몸을 바로 전체로 보고 해석하기에는, 특히 과학적으로 해석하기에는 우리 몸이 너무 어렵고, 인간이 그렇게 똑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 몸을 전체로 바라봤던 대표적인 학문이 한의학이다. 결국 ‘과학’적으로 우리 몸을 바라보는데는 실패했다.)

그럼 결국 환원주의가 궁극적인 승자인가? 내 생각은 아니다. 우리 몸은 너무나 복잡하기때문에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전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포단위로, 분자단위로 쪼개서 그것의 합으로 우리 몸을 해석하기에는 우리 몸이 너무나 복잡하다.

예를 들어, A라는 병을 정복하고자 했다면, 우리는 몸을 계속 쪼개었다. 결국 a라는 분자가 어떤어떤 기전으로 A라는 병을 일으킨다! 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래서 a라는 분자, 혹은 그 기전의 중간 어느 부분을 막는 약 b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 여러 연구와 임상시험을 거쳐 실제로 의료에 쓰일 확률은 매우 낮다. 그 이유는 b라는 약물이 우리몸에 들어와서 수많은 곳과 상호작용하고 아직까지는 우리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 몸과 질병은 어렵고, 쪼개어서 해결하는 환원주의가 최적의 철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 데이터 사이언스? Personal Health Record ?

의대다니는 내내 빽빽한 커리큘럼에 정신 없었지만 위와 같은 생각을 가끔씩 해왔던 것 같다. 그렇게 본과 4학년이 되었고 한동안 누리지 못했던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었다. 사실, 학교에서 국시공부하라고 주는 시간이었으나, 공부하기는 싫었다. 그 시간을 통해 의료와 관련된, 혹은 그냥 관심있는 여러 분야의, 세미나, 모임 등에 다녔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0만원 가까이 주고 들었던 2018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포럼이다. 학생 때도 최대한 의대 밖 세상을 많이 경험하려 노력했지만, 본과 4학년동안 내가 아는 세상은 너무 좁고, 내가 아는 의료의 범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많이 깨달았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괜히 질문하고 친해지고 말 걸고 이러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를 알게 된 것 같다.

많은 것을 느꼈지만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우리 세대에는 우리몸 전체를,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였다.

일단 데이터가 다양해 졌다. 지금까지 현대의학은 대부분 병원에 온 시점의 데이터만을 갖고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다양한 IOT(사물인터넷) 기기들에 부착된 센서들을 통해 우리인생의 대부분인 일상속의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해 지고 있다. 라이프로그 뿐만 아니라, 유전체 데이터까지 이용 가능하다. (우리는 질병의 원인을 크게 환경과 유전으로 나눈다. 지금까지는 이 유전을 가계도, 가족력 등으로 제한적으로 파악했다면, 이제는 유전체 데이터로 훨씬 자세한 분석이 가능하다.)

데이터가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이 크게 발전하고 다양해 졌다. 병원밖에서는 머신러닝 딥러닝 등의 분석법과 다양한 신호처리 기술이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흔히들 인공지능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머신러닝, 딥러닝을 데이터 분석법, 응용통계로 바라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은 Personal Health Record(PHR)이라는 개념이었다. 현재 병원에서 쓰이는 의료데이터 뿐만 아니라 유전체 데이터, 라이프로그 등의 개인의 건강에 관련된 데이터들을 ‘개인’단위로 모은다는 개념이다. 현재 건강과 관련된 데이터는 ‘의료기관’단위로 모아져 있는 의료데이터 정도이다. 내가 꿈꾸는 PHR 시대는, 개인 스마트폰에 각자의 유전체 데이터, 라이프로그, 태어났을 때 부터 진료 받으면서 여러 의료기관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를 갖고다니는 것이다. 환자를 진료할 때 뿐만 아니라 연구적으로도 예측하기도 힘든 엄청난 가치가 생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그럼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의대공부랑 잘 맞았던 것 같다. 단순히 진단 치료를 외우는 것보다는 해부, 생리에서 부터 병태생리, 진단 및 치료까지 이어지는 이 흐름을 공부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에 더해서 우리몸 각 구조 사이의 관계, 병과 병의 관계를 새롭게 알게될 때 즐거움을 느꼈다. 그런 지식들을 더 깊게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공부한 것으로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 내과를 하고자 마음 먹었다. (사실, 철학적으로는 환원주의 및 전문화되는 의료에 반하여 출발한 가정의학과와도 잘 맞아 고민을 했지만,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동시에 의료인문학자이신 멘토 유상호교수님과의 대화와 개인적인 고민 끝에 내과를 전공하기로 마음 먹었다.)

의학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는 동시에, 위에서 언급한 디지털 헬스의 발전과 다양한 건강데이터의 개인화가 이루어 지고 내가 그것을 분석할 능력을 갖춘다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딥러닝, 머신러닝을 포함하여 넓은 의미의 데이터사이언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공부를 하면서, 내가 원하는 세상이 오기에는 정말 많은 허들이 남아 있음을 알게되었다. 기술적으로 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 해결해야할 부분이 많고, 사람들의 관심도 아직까지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증편향인가 싶기도 하지만 현대의학이 또 한번의 큰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공부해야지..